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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영천 거조암 / 순수하고 자유분방한 표정, 한국식 불교조각상 오백나한이 모셔진 영산전

라이프 (The Healing Spot)

by 린다.J 2024. 9. 18.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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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영천 거조암 / 순수하고 자유분방한 표정, 한국식 불교조각상 오백나한이 모셔진 영산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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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조암영산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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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구 영산루

2시간반을 달려 도착한 곳은 경북 영천 거조암이다. 경북 영천의 청통면 사무소가 있는 네거리에서 서북쪽으로 난 찻길을 따라 팔공산 자락으로 올라가면 나타난다. 오래전 이슈였던 거조암에 오백나한을 모신다는 뉴스를 접하고 언젠가 꼭 가보고 싶다 막연한 생각을 했었는데 마침 기회가 생겨서 마음을 내었다. 

대웅전과 종무소

서기 693년 원효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지며 고려시대 보조국사 지눌스님이 일으킨 정혜결사의 발원지이기도 하다.
거조암(은해사)는
통일신라 헌덕왕 1년(809) 혜철국사가 지은 절로 처음에는 해안사라 하였다고 하며 여러 차례 있었던 화재로 많은 건물을 다시 지었는데, 지금 있는 건물들의 대부분은 근래에 세운 것들이다.

거조사는 은해사 보다 먼저 지었지만, 근래에 와서 은해사에 속하는 암자가 되어 거조암이라 부르게 되었다. 돌계단을 오르는 비교적 높은 기단 위에 소박하고 간결하게 지은 영산전은 거조암의 중심 건물이다. 고려 우왕 원년(1375)에 처음 지었으며, 석가모니불상과 사흘만 정성껏 기도하면 모든 소원을 들어준다는 526분의 오백나한이 모셔져 있다. 

영산전 오백나한

큰법당인 국보 제14호 영산전에 눈길을 빼앗겼다. 법당을 가득 메운 자유분방한 오백나한이 무슨 즐거운 일이라도 펼쳐지기를 기다리는 듯 제각각의 표정과 몸짓으로 자리하고 있다. 표정이 똑같은 나한은 하나도 없다.나한님께 소원을 빌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하여 그릇에 동전을 올리고 소원을 빌어보았다.그리고 오백나한상을 빠짐없이 친견하였다. 가운데 불단에서는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을 거느린 석가여래가 이 광경을 인자한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곁에는 아난과 가섭을 비롯한 석가의 10대 제자와 16나한의 모습도 있었다. 


매우 중요한 유산으로 평가받고 있는 이유는 앞면 7칸·옆면 3칸 크기의 규모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보았을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으로 꾸며져있는데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짜은 구조를 기둥 위부분에만 설치한 주심포 양식이 특히 영산전은 고려말·조선초 주심포 양식의 형태를 충실하게 보여주고 있어서이다. 

그래서 조금 더 특별해 보였던 대웅전 천정과 건축양식들이 눈에 들어왔다. 

나한(羅漢) 혹은 아라한(阿羅漢)은 인도어의 아르한(Arhan)을 음역한 말이다. "아라한(阿羅漢)"은 불교에서 깨달음을 완전히 이룬 성자의 경지에 이른 사람을 의미한다. 산스크리트어 "아라한" 또는 팔리어 "아라한트"에서 유래된 용어로, 문자적으로는 "적들을 파괴한 자" 또는 "모든 번뇌를 극복한 자"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깨달으면 곧 부처’라는 선불교가 꽃을 피우면서 우리나라에서도 나한이 신앙의 대상으로 자리잡았다. 다양한 견해가 있지만, 오백나한은 부처가 입적한 해 마갈타국의 왕사성 밖에서 부처님의 말씀으로 경전을 만들고자 모인 ‘제1결집’에 참여했던 오백비구에서 비롯되었다는 설명이 그럴 듯하다. 

예나 지금이나 나한은 다른 불교조각과는 달리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표현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16나한부터 인도에서 중국으로 전해질 때 외모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이 없었다고 하니 그들보다 법계가 낮은 오백나한은 말할 것도 없을것이다.

노승에서 동자승까지 다양한 세대를 망라하여 나한에 대한 전 시대의 고정관념에서 벗어나고, 상상력의 한계를 실험해 본 것은 아닐까 여겨질 만큼 표정과 자세가 모두 다르고 표현이 자유분방한 것도 영·정조시대를 지나면서 나타난 새로운 시대적 분위기가 반영된 결과물들로 거조암 오백나한을 원숙한 조각이라고 표현할 수는 없겠지만, 마치 캐리커처를 그리듯 대상의 특징만을 간결하게 잡아낸 솜씨에서는 현대적인 감각이 물씬 느껴졌다. 

 

흔히 불상에서 보이는 이상화의 흔적을 찾을 수 없고, 어떤 외래 밑그림의 영향도 받지 않은 순수한 한국인의 얼굴을 그대로 형상화했지 않았나 생각해본다. 

소박하게 있는 산신각에 참배도 하고 깨끗하게 흐르는 약수도 한사발하면서 거조암을 뒤로하고 발길을 돌려본다. 

500나한께 빌었던 소원이 이루어지길 마음 간절히 바래보면서~ 

가을날 팔공산자락의 단풍과 함께 여기 경북 영천 거조암에 발걸음을 해보아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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